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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고니와의 첫 만남, 그리고 아들이 된 나날들

by 고니마스터 2020. 5. 30.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전까지 실컷 놀던 어느날,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고양이를 키울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너무 예쁜 외모에 끌려 어린 고양이일 때 '사왔는'데 

자라면서 뚱뚱해지고 사람도 달가워하지 않는데다

털도 너무 많이 빠져 그만 키우고 싶단다.

마음 속으로는 거친 말을 해주며 내가 안 키우면 어쩌겠느냐 물으니

유동인구가 많은 신림역이 가까우니 케이지에 넣어 내놓으면

누구라도 데려가지 않겠냔다.

테이블을 뒤엎을 기세로 그럴 거면 내가 데려가겠다고

씩씩 대며 '받아온' 아이가 바로 고니다.

 

고니는 당시 나이도, 예방접종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로

말 그대로 덩그러니 나의 자취방에 오게 되었고

지금은 신혼집까지 거처를 옮겨오며 근 5년을 함께 하고 있다.

 

이미 성묘 상태로 내게 왔으나 중성화도 되어 있지 않아

하나 뿐인 명품백에 마킹을 쭉쭉 해두어 싹 버리게 만들고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하악질은 기본이요

피도 여러 번 봤더랬다.

 

 

고양이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일이야 당연한 것이고

나도 냥이를 처음 대해보는 것이 아닌 2회차 집사이지만

(첫 야옹이는 학창시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고니는 유독 사람을 싫어했다.

자취방이 투룸이었으니 망정이지 한 공간에 있었다면

아마 나를 암살하고도 남았으리라 짐작한다.

 

공간만 공유하고 눈길을 일부러 주지 않는 나날을

이어가던 어느 밤, 자고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것도 고니다.

그간 이유없이 달려와 깨물고 할퀴었던 것들이 미안하다는 듯

눈치를 어지간히도 보며 핥아주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렵사리 트게 된 마음이 상할까 걱정이 됐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이 아이가 예방접종도 안 되어 있고

중성화도 되어있지 않음으로서 발생할 미래의 일들이었다.

그래서 냉큼 케이지를 꺼내 욱여넣다시피 하여

신림동에 있는 서진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워낙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라 수의사 선생님께

고니를 인도하면서 연령과 건강 상태를 전반적으로 알고 싶다 하니

중성화 시기도 잡을 겸 건강종합검진을 제안하셨다.

 

연령은 추정키로 당시 약 2세 정도로, 사람으로 치면

10대에 나에게 온 것이니 사춘기가 오고도 남았겠지.

종합검진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신장 수치가 높았고

예방접종도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소견을 받아

접종을 진행했다.

당시 취준생으로서는 적금을 깨야 할 만큼 부담스러운

진료비였지만 너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지리라

눈물을 훔치며 터덜터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함께 살며 참 겁도 많고 소심하고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고양이가 고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래 수컷 고양이에 비해 굉장한 비만도를 가지고 있어서

제한급식과 저칼로리 급여를 지속하면서 

왜 이렇게 맛없는 밥을 조금씩 주는거냐 라는 눈빛도 받아야 했지.

 

그러던 어느날 자취방에 무단 침입한 누군가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앞을 막아서며 나를 보호해 주는 고니를 보며

다시금 나는 이 녀석과 미묘하지만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고

이 겁 많은 녀석이 저토록 용기를 내준다는 데 무한감동을 받았더랬다.

 

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고양이를 데려오면 내쳐버리겠다던 아버지

저 녀석은 고양이가 아니다, 저렇게 예쁠 수가 없다 라며

사랑에 빠지게 했던 대단한 녀석이다.

딱히 애교를 부리는 성격이 아님에도 아버지가 홀딱

빠졌던 걸 보면 내가 콩깍지가 씌어서가 아니라 뭔가 있는 녀석이다.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신혼부부가 되어 

신혼집을 차려 나온 나와 남편에게

둘도 없는 '털 많은 아들'이 되어 준 것도 고니다.

여전히 까칠하고 알다가도 모를 행동들을 하고 있지만

이 녀석을 누구보다 잘 돌보리라, 행복하게 해주리라

공부도 많이 하게 만들고 지갑도 열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는 고니와 함께 하며 생기는 일상들도 티스토리를 통해 공유하고

그간 공부하며 알게 된 부분들도 주관적으로 올려보련다.

이상 털 많은 아들 바라기인 집사이자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