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기른다."
집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격하게 공감할 만한 말이다.
오죽하면 캣페어의 슬로건으로도 쓰였을까.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은 책임감과 애정만
가지고는 되는 일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돈.
반려동물을 진정 행복하고 건강하게 기르려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화려하게 치장을 해주고 원치도 않는 옷을 사 입히는데
지출할 비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은 누구나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아
아프면 부담 없이 병원에 가고
중대한 질병이 아니라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진료비를 낸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예외다.
약 6개월마다 한 번 시행하는 나의 스케일링은 회당 5천원.
고양이인 고니의 경우 스케일링을 자주 할 필요는 없지만
마취라는 위험부담을 안고 진행해야 하며 회당 10만원.
(병원마다 편차가 있을 수 있다.)
평소 치아와 구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 주더라도
치석이 아예 끼지 못 하게 예방해 주거나
부수적인 요소들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예로, 건강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하는 건강검진.
사람은 대략 10만원 선에서 종합검진이 가능하다.
하지만 반려동물, 고양이의 경우 회당 프로그램에 따라
달라지지만 통상적으로 50만원의 지출을 예상해야 한다.
그마저도 지병이 있거나 이상예후가 발견된 아이라면
사람보다 자주 약 6개월마다 예후추적검사를 받아야 하므로
회당 5만원을 내외하는 진료비가 든다.
고니가 나에게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없고 구토를 지속적으로 해 병원에 데려갔을 때
고양이췌장염 진단을 받았다.
급성이라서 즉각 치료를 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총합 15번의 병원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총 진료비는 250만원 정도 지출했다.
이처럼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나의 애정이 극복할 수 있는 한계치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로
시험받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말이 너무 단호하고 과격할 수 있겠으나
기백만원에 이르는 수술비, 치료비를 청구받는다면
빚을 내거나 적금을 깨서 이를 지출할 용기가 있는 보호자는
과연 1,000만 반려동물시대에 몇이나 있을까?
금전적인 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고양이 집사 2회차이자 통합 10년 경력을 가진 나도
아직까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고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기죽은 보호자의 입장이 된다.
인간과 함께 해 온 역사가 매우 긴 개와 달리
고양이는 반려동물로서 함께 한 역사가 짧아
그에 대한 정보나 지식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진료비에 대한 사족이 길었으나
고양이용품을 구입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오늘은 고양이 집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거나
생각해 보았을, 혹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을
캣타워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Q. 고양이에게 캣타워 꼭 필요한가요?
고양이는 선천적으로 높은 곳을 좋아하는 동물,
비교적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 동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고양이들은 야생의 습성이 개보다 많이 남아 있어
표범 등이 높은 나무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바닥보다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캣타워는 고양이의 이런 야생본능을 충족해 주기 위해
제작된 것인데 문제는 그 높이다.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
바로 어제 난 기사에서는 21층 아파트 외벽에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던 고양이가 추락사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양이도 당연히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다치고, 죽는다.
다만 스프링처럼 늘어나고 수축하는 근육과 관절이
인간에 비해, 다른 동물에 비해 잘 발달해 있어
제 몸에 비해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안정적으로 착지할 확률이 높은 것 뿐이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캣타워 가운데는
매우 높고 화려한 것들이 많다.
내 경우에도 수십만원을 들여 가장 좋고 높다는
캣타워를 구입해 고니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딱 한 번, 캣타워의 2층 정도까지만 올라가고
그 뒤로는 오히려 내 침대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왜 일까?
-원래 고양이는 숨숨집을 사줘도 새 집보다는
상품이 담겨 온 박스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큰 돈을 들인 집사가 망연자실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음, 맞을 수도 있는 이야기다.
(킹리적 갓심...)
하지만 그보다는 냥by냥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고니가 캣타워를 마다하는 모습이
단순히 특이한 성격을 가진 아이라서, 야생본능이
다소 퇴화한 종(브리티쉬 숏헤어)라서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의학적 소견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전담 수의사 선생님과 검사와 상담을 진행한 결과
의외의 답을 받을 수 있었다.
A. 어떤 고양이들에게는 캣타워가 맞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어떤 고양이'라 함은 딱 고니와 같은 아이들이다.
1) 뚱뚱한 고양이
2) 관절이 좋지 않은 고양이
3) 높은 곳에서 떨어진 트라우마가 있는 고양이
4) 집사를 지나치게 좋아하고 집착하는 고양이
아래는 고양이의 평균 몸무게 표다.
물론 사람의 평균 신장, 체중처럼 조건마다
개별적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고니의 경우 브리티쉬숏헤어 / 8kg이다.
처음 내게 왔을 때는 9kg에 육박했으나 이게 많이 빠진 거다.
위 표에서 보면 골격이 큰 브리티쉬숏헤어라 하더라도
5.7kg의 몸무게가 평균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사를 다니면서 동물병원도 여러 차례 옮겨야 했고
수의사 선생님도 서너번 바뀌었는데
매번 체중관리의 중요성을 강조 받았다.
그리고 늘 덧붙여진 말.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 하게 하세요."
무거운 볼링공과 가벼운 탁구공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당연히 볼링공이 바닥을 더 패이게 한다.
만약 바닥이 탄성이 없다면?
볼링공은 그대로 튕겨나가거나 충격을 흡수할 거다.
고양이의 관절이 아무리 유연하고 충격 흡수에
용이한 구조라 할지라도 그 무게값이 있다면
당연히 부하와 하중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중에서 인기를 끄는 캣타워는 대부분 매우 높다.
당연히 집고양이는 야생의 표범에 비해
한 번에 높은 곳을 오르지 못할 수 있으니
스텝 바이 스텝으로 밟아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지만 문제는 내려오는 과정이다.
사람은 계단으로 올라가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건 미친 짓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고양이는 호기심도 왕성하고 비교적
높은 곳에 오르는 행위 대한 자신감이 있다.
스텝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 고양이도
내려올 때는 높은 곳에서 훅 뛰어내리듯이
점프하는 것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행위는 관절에 엄청난 무리를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캣타워는 하중을 견디고
고양이가 내려올 때의 흔들림도 견뎌야 한다.
바닥에 아예 못을 박아 고정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폴대로 지지하는 제품들은 뚱뚱한 고양이가
오르내릴 때 위태롭게 흔들리며
심지어는 고꾸라져 무너지기도 한다. (경험담이다.)
따라서 뚱뚱한 고양이와 함께 하는 집사라면
캣타워의 높이가 낮은 것을 골라주어야 한다.
제 아무리 뛰어내려도 부담이 되지 않을 선 상으로.
내 경우 고니가 침대 정도는 무리 없이
오가는 것, 그간 침대 오르내림으로 인해서
2년간 관절염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토대로 침대 높이 정도에 준하는 캣타워를 사주었는데
이마저도 저 스스로가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지
높이 올라가지 않고 중간 층에 늘 머문다.
정리해 보자면,
굳이 큰 돈을 들여 위태롭게 높은 캣타워를 사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또한 집사에 대한 애착이 지나치게 강한
고양이는 오히려 높이가 어마무시한 캣타워 보다는
집사의 곁에 머물 수 있으면서
집사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을 만한
'적당한' 높이와 쉼터를 겸할 캣타워가 적합하다.
캣타워를 고를 때 발판의 너비와 크기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단순히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좋아한다고 하니까
높이만 보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리를 잡고 쉴 수 있는 넉넉한 너비,
잠결에 뒤척이다 떨어지지 않을 만한 너비를
갖춘 제품을 골라야 한다.
(바보도 아니고 설마 자다가 떨어지겠냐고?
유튜브에서 Cat funny clip 혹은 Cat compilation만 검색해도 수두룩하다.)
고니가 딱 지나친 집착, 분리불안이 있는 고양이인데
다른 방에 설치한 높고 비싼 캣타워를 마다하고
내가 주로 업무를 하는 컴퓨터 방에 있는 낮은 캣타워에
머무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라 짐작한다.
또한 캣타워만 사준다고 해서 고양이의
야생본능을 충족해 줬다고 만족하지 말자.
높은 곳에 올라가 시야가 확보되는 것은
물론 고양이에게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볼 게 없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63빌딩 전망대,
시카고의 스카이스크래퍼가 이토록 유명해졌을까?
사람보다도 더 호기심이 왕성한 고양이와
집에서 함께 하고 싶다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볼 것' 도 충족해 줘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캣타워를 보다 안정적으로 고정하고자,
온 집안이 털로 범벅이 되는 것 좀 막아보겠다고
방 구석 모서리에 캣타워를 설치했었다.
하지만 고니를 보면 귀퉁이에 처박힌 캣타워에
올라가 쉴 때보다 야트막한 의자를
밟고 올라가 건조기 위에 자리를 잡고
창 밖의 새와 길고양이, 사람, 오토바이를
구경하는 것을 훨씬 행복해 한다.
(인터뷰 해 봤다.)
가능하다면 무조건적으로 높은 캣타워를 구석에
'짱박아두기'보다는
흥미로운 소리와 볼것이 보장되는 장소에
적당한 높이의 캣타워 그리고 방묘창을
함께 설치할 것을 권하고 싶다.
정말 최종 정리를 해 보자면,
캣타워는 고양이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내 고양이의 체중, 크기, 연령, 관절 상태
그리고 집사에 대한 애정도도 충분히 고려하자.
높은 곳에 올라갔지만 딱히 할 일을 찾지 못 해
지루함을 잠으로 달래는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삶'을
주고 싶지 않다면,
진정 고양이가 흥미와 휴식을 동시에 알아서
조절할 수 있는 위치에, 건강 상태를 고려한
적당한 높이와 너비의 캣타워를 구비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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